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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함과 평범함 사이에서 자리찾기_정주원(작가)

 우리는 미술사 속에서 이미 유명해진 많은 작가들을 배운다. 그들의 삶과 그림에 대해서. 기록된 그들의 삶과 그림은 위대하다. 어떤 작가의 작품 제목을 빌려서 말하자면 빌어먹거나, 버티거나 위대해지거나 셋 중 하나인 작가의 삶에서 역사에 기록된 이들은 분명히 위대한 쪽에 속할 것이다. 우리는 그들을 책이나 전시 혹은 다큐멘터리 영상 등을 통해 간접적으로 그들의 삶과 작업을 접한다. 

 그들의 삶과 한국의 평범한 미대생의 삶은 간극이 꽤나 커보인다. 버티기 쪽에 더 가까워보인다. 복도에는 캔버스가 아무렇게나 쌓여있는 미대 실기실에서 과잠을 입고 야작을 하고 배달음식을 시켜먹는 일상. 형광등 불빛아래 연회색 기둥과 벽, 환풍기가 있고 작품을 포장하고 남은 은색 포장지가 구석에 쑤셔 박혀있는 미대의 작업실에서 하는 누드크로키 수업.

 권능은 그것들을 뒤섞는다. 한국의 평범한 미대생이 느끼고 경험하는 일상의 풍경과 책으로 배워왔던 예술가들의 이미지를 뒤섞는다. 앤디워홀도 야작을 하다가 맥딜리버리를 시켜먹었을까. 반고흐가 자취를 했다면 자취방은 엄청 지저분 했겠지. 쿠사마 야요이는 카페에 가면 버블티를 먹었을까. 권능은 이런 가벼운 상상을 오랜시간에 걸쳐서 치열하게 그려내서 단단하게 완성된 사실적인 이미지로 그려낸다. 그는 그의 작업 속에 등장하는 유명 작가들을 부러워하거나 동경하는 것일까. 아니면 그들도 우리와 다르지 않다라는 것을 강조하고 싶은 것일까. 그것도 아니라면 그림을 그릴때만큼은 스스로 그들을 배치하고 마음대로 가지고 노는 일종의 유희에서 희열을 느끼는 것일까.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세 가지 전부 다 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그는 “쿠사마 야오이 만큼 너도 특별한 사람이야”, 혹은 “너만큼 쿠사마 야오이도 평범한 사람이었을거야”라고 말하는 듯 하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를 후대에 뭐라고 이름붙일지는 모르겠지만, 예술은 사조들의 정반합을 반복하며 발전해 왔으며 지금은 하나의 사조로 묶기는 어려운 다원화된 가치의 시대라고 생각한다. ‘그 가운데에서 여기 지금 한국에서 작업을 하고 있는 나는 어떤 작업을 해야하고 어떤 그림을 그려야할까’. 권능은 역사에 기록된 작가들의 삶과 작업을 보면서 스스로의 작가로서의 정체성을 진지한 태도로 고민하고 자칫 슬프거나 무거워질 수 있는 그 고민에 약간의 농담을 섞어서 그림으로 풀어낸다. 

 권능 작업의 매력은 지극히 현실적인 피사체와 사진의 현장감에서 나오는 것 같다. 실제로 작가는 항상 카메라를 들고 다니며 작업할 때나 놀때나 때를 가리지 않고 작업용 사진들을 찍는다. 예술이 일상이 되고 일상이 예술이 되는 작업을 한다는 작가의 말마따나 그는 참 열심히 놀고, 또 그만큼 열심히 작업한다. 그에게 있어서 작업의 연장이 놀이이고 놀이의 연장이 작업이 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그의 삶이 바뀔때마다 작업이 어떻게 바뀌어 나갈지가 궁금하다. 실제로 그가 잘나가는 작가가 되었을 때, 그의 그림의 배경과 유명작가의 얼굴이 이질감이 없어질 때 그의 작업은 어느 방향으로 방향을 틀어서 발전해나갈까. 그전에 이제 그는 졸업과 함께 작업의 시작이 되었던 미대라는 공간을 떠나가서 새로운 장소와 공간에서 작업을 해나가야 할 텐데 그러면 어떤 작업을 하게 될까 궁금하고 또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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